문화생활

정유재란 남원성 전투에 숨진 전사자 3,735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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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고야산에 공양비에 420명 기록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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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정유재란 때 일본 수군의 장수로 출전했던 시마즈 요시히로가 임진·유년 왜란에 전몰한 적군과 아군의 영혼을 위로하는 일본 고야산에 세운 고려진적미방전사자공양비에 남원성 전투에서 420명을 죽였다는 기록이 나와 주목을 받고 있다.


20일, 남원문화원(원장 김주완)에서 매년 남원시민을 대상으로 운영하고 있는 남원향토대학 7번째 강사로 초빙된 순천향대학교 박현규 교수는 “정유재란 421주년을 맞아 일본 고야산에 남원성 전투에서 당시 북문을 담당했던 왜군 시마즈 요시히로와 그의 아들 타다츠네가 정유재란이 끝나고 일본으로 돌아간 후 1599년(선조 32) 6월에 적군과 아군의 전사자들을 위로하는 공양비를 세웠는데 비에는 이러한 기록이 남아있다.”고 발표했다.


비의 중앙에는 ‘고려진적미방전사자공양비’라는 비명과 함께 좌우로 비를 세운 내용을 기록하였는데 내용을 보면 경장 2년(1597) 8월 15일에 전라도 남원에서 대명 군사 수천 명을 토포하는 가운데 자신이 420명을 죽였다. 동년 10월 그믐에 경상도 사천에서 대명인 8만여 명을 공격해 죽였다. 고려국 진지에서 싸우다 죽은 적과 아군의 군사들이 모두 불도에 들어가기를 바란다. 위 전장에서 아군 사졸이 화살, 칼, 몽둥이에 죽은 자가 3천여 명이고, 바다와 육지에서 횡사하거나 병사한 무리가 모두 기술하기가 어렵다.」라고 적혀 있다.


또한 시마즈 요시히로의 가신 마스모토아베가 남원성 전투를 기술한 도진가고려군비록에 남원성을 함락하는 과정에서 살육장면을 기술해 놓았는데 ‘8월 15일 밤, 화살과 조총을 쏘아대며 창과 장도로 성문을 돌격할 때 갑자기 성이 점령되자 적 5백 명이 도망쳤다. 살마군사가 달려가 420여 명을 죽였고, 적 1명이 나무를 타고 올라가는 것을 병고 대장이 조총으로 쏘아 죽였다.’고 기록되어 있다고 말했다.


시마즈 요시히로는 임진왜란 때 1만5천명의 군사를 이끌고 조선을 침략하였고 정유재란 남원성 전투 때는 왜장 고니시 유키나가의 지휘아래 남원 사대문을 공격하였는데 동문은 하치스카 이에마사, 남문은 우키다 히데이에, 서문은 고니시 유키나가, 북문은 시마즈 요시히로가 맡았는데 북문은 조선군이 가장 많이 전사한 곳이며 일본으로 되돌아 갈 때 남원에서 80여명의 도공들을 끌고 간 장본인이다.


특히 이번 발표한 내용에서 남원성 전투에서 순절한 조명군의 숫자가 확인되지 않았는데 조선물어 등 고문서 자료에 나타난 것을 보면 남문에서 1,001명, 서문 1,034명, 동문 740명, 북문 951명 등 3,735명이 전사한 것으로 확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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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규 교수는 “이 비는 정유재란 때 죽은 적과 아군 전사자의 영혼을 공양하기 위해 세웠는데 공양 대상자를 크게 3부류로 나누어 첫째는 1597년 8월 15일 남원성 전투에서 살육한 420명, 둘째 같은 해 10월 사천전투에서 살육한 명군 8만여 명, 셋째 정유재란 때 시마즈 요시히로의 휘하의 전사자 3천여 명이다”고 말했다.


덧붙여 “시마즈 요시히로가 이 비를 세운 것이 죽은 사람을 공양하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 속에 임진·정유란 때 요시히로 부자가 세운 전과기록을 드러내려는 숨은 의도를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한편 남원문화원 김주완 원장은 “정유재란 남원성 전투에 관련한 기록 중 일본에 전해지고 있는 기록들을 찾아 남원성 전투를 보다 깊게 연구하여 만인정신의 숭고한 충의 정신을 기리는 사업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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