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남원풍수와 김병종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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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철성, 자유기고가

먼저 고백할게 있다. 필자는 풍수를 잘 알지 못한다. 다만 풍수를 좋아해서 풍수서적을 사 모으고 간혹 서 너 권 탐독 했을 뿐이다. 지금도 시골에서는 연례행사로 조상님 산소에 시제(시절제사)을 모시러 다닌다. 필자도 아주 어렸을 적부터 부모님과 친척 분들을 따라 금지면 옹정리 개징개재며 입암리 북동쪽의 봉지미 등으로 시제를 다녔었다. 훗날 남원풍수 자료를 정리하면서 개징개재는 개가 새끼를 품은 형국이고, 봉지미는 봉(봉황)의 꼬리 같대서 붙여진 풍수지명임을 알게 됐다. 흔히 봉황이라 부르지만 봉은 수컷이고 황은 암컷을 가리킨다.

지난 3월 2일 남원 어현동(함파우)에 한국미술사의 한 페이지를 굵게 장식한 역사적 사건이 있었다. <남원시립김병종미술관>개관(이하 미술관)이 그 빅 사건이다. 미술관 개관은 단순히 미술품이라는 재물의 획득만이 아닌 김병종이라는 인물까지 얻은 셈이다. 그러니 남원으로서 대단한 횡재이자 경사인 셈이다. 남원풍수와 미술관은 어떤 연관이 있는 것일까. 눈치 빠른 독자라면 ‘재물과 인물’에서 풍수 발복임을 알아챘을 것이다.

우선 남원풍수에 대해 소략해 보면, 이 글의 ‘남원풍수와 김병종 미술관’에서 ‘남원’이라는 공간 범위는 각 읍면동을 포한한 남원시 전 지역이 아닌 남원시내로 국한된 남원을 말한다. 남원은 요천수와 광치천(축천)으로 둘러싸인 침식분지다. 이 때문에 여름철 홍수 때면 도시는 수해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이런 터를 풍수에서는 행주형(行舟形)이라 부른다. 백과사전은 행주형을 “물길을 헤치고 나아가는 배의 형상을 한 혈”이라 풀이하지만 풍수에서는 배가 떠나간다는 것은 수해를 입는다는 의미로 해석한다.

“이 배가 떠나가 버린다는 것은 남원 고을이 없어진다는 뜻이 된다. 그러니 붙잡아 두어야 마땅한 일인데 그를 위하여 마련한 것이 바로 우리풍수의 가장 큰 특징인 비보, 즉 어머니인 남원고을 명당 터를 달래고 고쳐드리는 일이다”(최창조 <땅의 눈물 땅의 희망>) 그래서 남원은 행주형인 남원의 배를 붙잡아 두기 위해 다양한 장치를 마련했다. 먼저 조산이다. 조산은 지금도 조산동이라는 지명으로 남아있다. 조산은 명당 터의 허결한 부분을 돌이나 흙으로 무더기를 쌓아 기의 누설을 차단하는 역할을 한다. 즉 남원 정기의 누설을 막고자 조산을 조성했다. 또 만복사지에서 조산을 지나 요천수 까지 토성을 쌓아 배가 떠나가는 것을 원천적으로 차단했다. 이 때문에 토성안쪽이 가방 뜰이라 하는 지명까지 생겼다.

도선 국사의 창건설화가 전해지는 선원사의 약사전 앞에 수상한 돌기둥 두 개가 있다. 이 돌기둥 역시 행주형인 남원이 떠나가는 것을 막고자 해서 세운 것이다. 배의 닻줄을 이 돌기둥에 묶어 두었던 것이다. 또 지명 비보 책도 마련했다. 지난 6월 23일  남원시&#160;문화도시사업추진위의&#160;<문화버스를&#160;타고&#160;만나는&#160;남원>&#160;프로그램의&#160;첫 번째&#160;강사로&#160;김병종&#160;화백과&#160;함께하는&#160;미술기행이 있었다. 행사 후 김 교수와 남원시 문화예술과장 등 관계자분들이 보련암차를 마시려 찾은 곳이 금지면 서매리 매촌 마을의 고리봉&#160;자락&#160;매월당이다. 그 곳의 고리봉이 바로 지명비보의 현장이다. 배가 떠나가지 못하게 고리봉의 고리에 배의 밧줄을 꼭꼭 묶어 두었던 것이다.
<영남의 풍수>를 쓴 장영훈은 행주형에 대해 “지금 당장 항행 할 것 같은 배라는 모양새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 배에 화물이 채워지면 이를 재물 발복으로 보았고, 사람이 승선하면 이를 인물 발복으로 쳤던 것이 행주형에 걸린 풍수정서다. 그런데 정작 배가 출항해 버리면 이는 인물, 재물 모두가 떠나가 버린 터가 된다. 그런 까닭에  돛대를 세워 놓아도 장작 돛폭은 펼쳐서는 안 된다는 금기가 따라 붙는다.”(장영훈 <산 나고 탑 나고 절 나고>)

서두에 밝혔듯 남원 어현동(함파우)에 김병종 미술관이 조성됐다. 미술관이 들어 선 어현동의 함파우 역시 삼면이 원천천, 주촌천, 요천수로 둘러싸인 행주형이다. 함파우는 한국중앙학연구소의 채집 자료에 의하면, “명칭 유래에 대해 정확히 알려진 바는 없으나 함파우는 산 속에 위치한 마을인데 ‘물결을 머금고 있다’는 것으로 보아 풍수지리와 관련된 지명으로 추측된다.”고 밝혔다. 미술관 조성을 풍수 식으로 풀이하면 인물 발복인 김병종 교수와 재물 발복인 고가의 미술품을 실은 배가 함파의 물결위로 남원에 입항한 역사적 사건인 셈이다. 그래서 묻고 싶다. 그렇다면 남원은, 남원 시민들은 김 교수와 김병종미술관인 인물과 재물의 풍수발복의 배가 떠나가지 않게 하려는 비보 책으로 어떤 것이 마련해 놓고 있는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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