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김재성 주필의 용성춘추-양공주와 냉면의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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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대하면서 살았기 때문인가? 5000년을 함께 산 세월에 비해 70년 헤어져 산 세월이 짧은 것 같지만 그렇지도 않다. 이를 실감케 하는 것이 같은 말을 전혀 다른 의미로 해석하는 의사 소통의 장애다. 

90년 대 남북 적십자회담 때 평양에서 일어난 해프닝. 우리 측 총리급 대표가 냉면을 먹다가 북한 도우미 여성에게 ‘미스 리’하고 불렀다. 그랬더니 돌아 온 반응, “저 양공주 아닙네다.” 이 촌극은 그동안 북한이 남한에 대해 어떻게 주입시켰는지 짐작이 가는 대목이다. 확인할 수 없지만 어쩌면 그 때 북한 언론이 “남측 고위 인사가 우리 도우미를 양공주 취급했다‘고 특필하지 않았을까?

남한 대통령이 15만 평양 시민 앞에서 연설을 하는 등, 상전이 벽해가 된 지금도 사리에 맞지도 않는 ’목구멍 냉면‘ 소동이 국회, 언론, SNS 상에서 계속 회자되는 것을 보면 20여 년 전 북한이야 어련 했을까 하는 상상이 되고도 남는다. 

‘입이 문제인가? 귀가 문제인가?’ 문제의 냉면소동의 근원을 추적한 본지의 글이 나간 후 독자로부터 제보가 들어왔다. 내용인즉 “‘냉면이 목구멍으로 넘어 갑네까?’는 ‘목 넘김이 좋은가요?’ 즉 ‘맛있습니까?’ 의 북한식 다른 표현”이라는 것. 제보자는 또 “우리 측 어떤 참석자가 사리 추가를 요청한 끝에 그 말이 나왔다는 맥락을 봐도 나쁜 의도가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고 덧붙였다. 

말이 통하지 않는 이민족끼리도 손짓발짓으로 의사소통을 할지언정 오해로 적대감을 쌓지는 않는다. 그런데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동족끼리 터무니없는 오해로 분노를 일으킨다면 떨어져 살아서 생긴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못 알아듣는 것이 아니라 듣지 않으려는 것이다. 

녹음기는 들은 대로 기억하는데 사람의 귀는 들은 것을 다 기억하지 못한다. CCTV는 있는 그대로 보고 재현하는데 사람의 눈은 본 것을 다 재현하지 못한다. 조물주의 피조물인 인간의 눈과 귀가 인간의 제품인 CCTV나 녹음기보다 성능이 떨어지는 셈인데 그것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 인간의 맹점 때문이다.

성인은 ‘안다’는 것마저도 버리라고 가르치지만 자기 식견과 경험으로만 보는 인간의 한계는 어쩔 수 없다. 다만 다르다는 이유로 배타하고 말살하려 들지만 않는다면 성인의 가르침대로 따르는 것 만이야 못하겠지만 각인이 자기 식으로 보고 들음으로서 하나의 사물에서 다양한 이미지를 창출할 수 있으니 그 또한 좋지 않은가?

예수가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태어났다든가 죽은 지 3일 만에 부활했다는 것은 과학적으로는 허구다. 하지만 이 허구에 대한 믿음으로 기독교가 성립되었고 그렇게 성립된 기독교가 찬란한 현대문명의 자양분이 되었듯이 자기 식으로만 보고 듣는 인간의 맹점도 실은 조물주가 인간에게 부여한 배려일지도 모른다. 

70년 간 다르게 보고 들으면서 형성된 전혀 다른 남과 북의 자원과 문화를 여기쯤에서 융합하면? 누가 아는가, 한반도가 해양과 대륙을 융합한 새로운 문명의 발상지가 될지. 두  개체가 양립하다가 제 3의 새로운 것으로 통합된다는 변증법(Dialectic)의 어원이 대화(Dialogue)인 것을 보더라도 남과 북 이제야 말로 양공주니 냉면이니 할 게 아니라 대화로 풀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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